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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과 월지. ⓒ 2022. 제르엘 all rights reserved.동궁과 월지. ⓒ 2022. 제르엘 all rights reserved.


경주, 아무래도 많은 분이 ‘경주’ 하면 수학여행을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어떤 분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분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로 남아 있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굳이 수학여행이 아니더라도 많은 분께서 경주를 방문하시는데요, 오늘은 이러한 경주의 유적 두 곳에 대해 간단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 강좌는 2022년 1학기 연세대학교 사학과 정기 답사 자료집의, 제가 담당한 부분의 수정 전 작성분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황남동 대형 건물지 전경. ⓒ 2022. 제르엘 all rights reserved.

황남동 대형 건물지 전경. ⓒ 2022. 제르엘 all rights reserved.

 

1. 황남동 대형 건물지

 

사실 이곳은 들어보신 적도 없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가 보면 허허벌판이거든요. 잔디밭이랑 건물의 흔적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이 허허벌판에 도대체 뭐가 있었는지, 그리고 이게 도대체 왜 중요한지 궁금하실 겁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유적을 소개하면서 차차 하겠습니다.

 

황남동 대형 건물지 유적은 첨성대와 계림 사이에 있는 유적입니다. 첨성대와 계림 둘 다 유명한 곳이기에, 이 사이를 이동하셨다면 모르는 새에 지나쳤을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이 유적은 15호의 건물터로 이루어져 있으며, 월성이 포함된 경주동부사적지대에 있어 신라의 왕경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1) 주목해야 할 유물

 

황남동 123-2번지 지진구 노출상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공공누리 제1유형.

황남동 123-2번지 지진구 노출상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공공누리 제1유형.

 

황남동 대형 건물지에서는 2009년 기준으로 총 12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요, 이들 중 우리가 주목할 유물은 바로 지진구입니다. 지진구를 한자로 써 보면 地鎭具, 땅을 지키기 위한 도구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름처럼 이 유물은 당대 신라인들이 지신에게 건물의 안전과 무운을 빌기 위해 사용한 물건입니다. 지진구는 보통 7세기 이후의 경주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황남동 대형 건물지에서 지진구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이곳의 건물이 7세기, 혹은 그 이후에 건설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황칠안료로 밝혀진 유기물(유개합).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공공누리 제1유형.

황칠안료로 밝혀진 유기물(유개합).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공공누리 제1유형.


이들 지진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은 10호 건물지에서 출토된 ‘인화문유개합(황칠지진구)’입니다. 이 지진구는 어떠한 물질을 담고 있는 항아리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이 항아리 안에는 다른 지진구에는 들어있지 않은, 황칠이라는 특이한 물질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황칠은 목공품 마감 등에 쓰이는 일종의 도료인데요, 이 지진구의 존재는 적어도 신라 시대부터 한반도에서 황칠이 도료로 사용되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 황칠나무의 완전한 벌목으로 인해 황칠 기술이 실전된 상황에서 이 지진구를 통해 사용하지 않은 황칠이 발견되면서 여러 문헌 정보와 함께, 비슷한 기술인 일본의 ‘금칠’이 한반도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답니다.
 
2) 그럼 도대체 뭐 하는 곳이었을까?


그렇다면 이 거대한 공터가 왜 신라 월성 근처에 있으며, 그곳에서 왜 저런 아무나 범접할 수 없어 보이는 지진구들이 발견된 걸까요? 그 이유는 이곳이 과거 신라의 종묘로 추정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럼 대체 왜 이곳이 종묘라는 걸까요? 이에 대해 대답하려면 먼저 이곳의 건물 배치에 관해 이야기해봐야 합니다. 이곳의 건물 배치는 과거 중국의 대표적인 주택 배치 중 하나이자, 궁궐이나 사당 등에도 사용되던 건물 배치인 삼합원 혹은 사합원 구조와 유사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조선의 성균관과 문묘 등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이 유적이 신라의 종묘임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또한, 월성의 왼쪽인 서쪽에 위치하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좌묘우사, 즉 궁궐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종묘가, 오른쪽에는 사직이 위치하는 배치에도 부합합니다. 이와 함께 7세기 말, 주변 건물과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까지 고려해 보면 이 유적은 신라의 종묘일 가능성이 매우 큰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추정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태조묘를 아직 못 찾았거든요. 2011년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호 건물터를 태조묘로 추정할 경우, 분명히 가장 커야 할 태조묘가 가장 작다는 문제와 함께, 막힌 벽 뒤에 쓸데없이 계단이 존재한다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1호 건물터를 종묘의 입구로 보면 태조묘를 찾을 수 없죠, 따라서 이 유적의 목적을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주변 지역에 대한 추가 발굴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궁과 월지 전경. ⓒ 2022. 제르엘 all rights reserved.

동궁과 월지 전경. ⓒ 2022. 제르엘 all rights reserved.

 

2. 동궁과 월지

 

자, 허허벌판 얘기를 너무 길게 한 것 같습니다. 이제 수많은 사람이 야경을 보러 찾아온다는 동궁과 월지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 봅시다. 경주 가시는 분 중에 여기 안 가시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요. 과연 이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지 같이 알아봅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곳은 신라 문무왕 19년, 서력기원으로 따지면 679년에 창건된 궁궐입니다. ‘동궁’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태자의 거처로 쓰였죠.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월지는 동궁보다 이른 문무왕 14년에 조성되었다고 하며, 연회장으로 쓰였다는 추측이 지배적입니다. 두 건물의 용도가 너무나도 이질적이기에 이들을 분리해서 보려는 시각도 있습니다. 여담으로, 이곳이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불과 11년밖에 안 됐습니다. 이러한 이름은 2011년 문화재청에 의해 붙은 것이며, 그전에는 안압지나 임해전지 등으로 불렸습니다.

 

1) 유적의 구조


동궁과 월지는 크게 서쪽의 건물터 13개 동과 남쪽의 건물터 13개 동, 그리고 연못에 접해 있는 건물터 5개 동과 거대한 인공 연못인 월지로 구성됩니다. 남쪽 건물터는 월지와 동시에 건설되었고 서쪽 건물터는 그 이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고요, 이 건물터 중 가장 큰 것은 서쪽의 6호 건물터인데, 이곳은 궁성의 정전 역할을 했다고 추정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동궁은 태자의 거처 겸 집무실인데요, 따라서 이 안에는 수많은 관청과 전각이 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건물의 이름은 『삼국사기』나 발굴 조사 당시 발굴해낸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정당(思正堂, 바름을 생각하는 집)이라는 건물은 동궁의 핵심 건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월지는 15,658㎡ 면적, 대충 환산해 보면 4,737평 정도 되는 인공 연못으로, 연못 안에는 크고 작은 세 개의 섬이 있습니다. 이곳의 동남쪽 모서리에는 입수로, 석조(石槽), 소지(小池), 폭포 등으로 구성된, 물이 들어오는 시설이 있고, 이 시설의 동쪽에는 저수 시설로 추정되는 유구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변기시설과 배수시설 연결 모습.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공공누리 제1유형.

변기시설과 배수시설 연결 모습.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공공누리 제1유형.

 

이건 여담인데, 비교적 최근에는 수세식 화장실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1300년 전의 화장실이라니, 뭔가 신기해 보이지 않나요?

 

2) 주목해야 할 유물


여러모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유적이라 발굴된 유물 중 주목해야 할 유물도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여기서는 간단히 3개의 유물에 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의 월지관에서 감상하실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① 목간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목간은 ‘글을 적은 나뭇조각’을 뜻합니다. 즉 당대의 편지나 공문서 비슷한 물건이죠. 이곳의 목간은 1975년경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최초라고 합니다. 내용은 약재의 이름이나 글자 연습 같은 사소한 것들부터 매우 큰 역사적 가치가 존재하는 것들까지 다양한데요, 특히 세택(洗宅)과 신번(辛番)이라는 글자가 적힌 것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세택은 동궁 내 관청 부서를 일컫는 이름으로 추정되며, 궁중 내 잡역을 담당한 것으로 추정되나 이에 관련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신번은 행사나 의례 등에 사용된 글자로 추정되나 자세한 의미는 알 수 없다고 하네요.

 

② 청동 접시
위에서 말한 세택과 신번이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접시입니다. 2012년경 국립경주박물관의 남쪽에서 출토되었으며, “신□동궁세택(辛□東宮洗宅)”이라는 통일 신라 시대의 명문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지워진 글자는 의도적으로 지운 것이라고 하고, 남아 있는 米(쌀 미)의 형태나 앞서 말한 목간 등의 자료를 토대로 番(차례 번)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14면 나무 주사위(목제 주령구)의 복원품.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2022. 제르엘 all rights reserved.

14면 나무 주사위(목제 주령구)의 복원품.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2022. 제르엘 all rights reserved.

 

③ 목제 주령구
이건 아마 들어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당장 경주 이곳저곳에서 모조품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술 게임용 주사위입니다. 1975년경 출토되었으며. 사각형과 삼각형이 각각 6개, 8개씩 조합된 14면체의 주사위입니다. 요즘 주루마불처럼 지시문을 적어놓은 게임판에서 평범한 6면체 주사위를 굴려 가며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고, 주사위에 각 면에 ‘음악 없이 춤을 춰라’, ‘시를 한 수 읊어라’ 등의 지시문이 적혀 있고, 주사위를 굴린 사람이 걸린 면에 적혀 있는 벌칙(?)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참고로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 가 보면 이 주사위의 진품이 아닌 모조품이 전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시관에 모조품이라니, 그럼 진품은 대체 어디 있을까요? 박물관 내부의 신라천년보고(舊 영남권수장고)에 있을까요? 아닙니다. 진품은 오랜 옛날 보존 처리 과정 중 불에 홀라당 타 버리는 바람에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사진 자료와 전개도 등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복원이 가능했죠.

 

④ 기타 유물
아무래도 건물이 있었던 만큼 기와도 발굴되었고, 토기나 불상, 금동제 장신구, 철제 무기, 농기구, 마구, 그리고 비녀 등의 일상적인 유물도 발굴되었습니다. 또한 동물 뼈도 발견되었다는데…. 아마도 술 한잔하면서 안주로 먹은 게 아닐까 싶네요.

 

지금까지 경주의 대표적인 유적 두 곳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습니다. 이처럼 경주의 수많은 유적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께서 경주에 방문하신다면 이런 유적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든, 학예사분께 설명을 듣든, 아니면 직접 유적을 톺아보든. 경주의 유적과 유물은 여러분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더 많은 유적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좌가 일주일 이상 늦어져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면 저는 다음 주 강좌 〈제헌절 특집: 헌법은 어떻게 제정되었을까? - 5.10 총선거와 제헌 국회〉에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문헌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慶州 皇南洞 大形建物址』, (문화재청, 2009)
  • 김경열, 「경주 東宮과 月池 유적 건물지 配置 및 空間區劃 검토」, 『한국고대사연구』 제100호, 한국고대사학회, 2020, p.51-82.
  • 김병곤, 「신라 東宮의 역할과 영역」, 『韓國古代史探究』 第20卷,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15, p.75-107.
  • 金元龍 등, 『雁鴨池 發掘調査報告書』, 文化公報部 文化財管理局, 1978.
  • 金志垠, 「통일신라 黃漆의 일본 전래와 金漆」, 『新羅文化』 第41輯,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13, p.257-280.
  • 문화재청, 「통일신라시대 동궁(東宮) 관련 청동접시 출토」, 『문화재청 보도자료』, 2012.06.19., 2022.04.10. 검색, URL
  • 이상준, 「동궁과 월지 조사 연구 현황과 과제」, 『한국고대사연구』 제100호, 한국고대사학회, 2020, p.51-82.
  • 이재환, 「신라 동궁 출토 14면체 酒令 주사위의 명문 해석과 그 의미」, 『동서인문학』 제54권, 계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8, p.7-39.
  • 전덕재, 「삼국사기에 보이는 신라의 왕경과 연구 방법론」, 『월성과 신라왕경 : 신라 왕경 연구 기초자료 학술세미나 자료집』,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7, p.29-55.
  • 정연식, 「통일신라의 종묘 건축과 종묘제의 변화」, 『韓國史硏究』 제153호, 한국사연구회, 2011, p.77-125.
  • 최순조, 「국립경주박물관 남측부지 유적 출토 신명문자료」, 『목간과문자』 제10호, 한국목간학회, 2013, p.191-207
  • 하시모토 시게루, 「월지(안압지) 출토 목간의 연구 동향 및 내용 검토」, 『한국고대사연구』 제100호, 한국고대사학회, 2020, p.223-265.
Seba님 포함 2명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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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엘 85 Lv. (85%) 589700/591680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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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랩퍼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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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s로 잘들어보았습니다 ㅋ

고대의 유물 " 경주홍보대사" 하셔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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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4. 12:08
제르엘 작성자 → 랩퍼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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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작 오디오북인가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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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4. 18:04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