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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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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 왕은 '폐하'라는 칭호를 들어선 안 됐다.
조선은 '황제'의 나라 중국 아래에 있던 '제후국'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위계 질서상 왕은 황제의 바로 아래 단계에 해당했다.
하지만 조선은 제후국들 가운데 중국을 정말로 극진히 떠받들던 덕분에 많은 예쁨을 받았다.
그 때문에 다른 제후국과는 달리 나름대로 자주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칭호에서는 예외 없이 '폐하'를 쓸 수 없었다.
2. 조선 왕은 따로 '화장실'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대변과 소변의 상태를 보고 사람의 '건강'을 판단하고는 했다.
천만 관객을 넘은 영화 '광해'에서 보았듯 조선의 왕이 '배설'하는 모습은
궁녀를 비롯한 왕을 시중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지켜보았다고 한다.
3. 조선 왕은 하루 '다섯 끼'를 먹었다.
왕이 사는 궁중의 정식 식사는 아침 10시의 아침 수라와 오후 5시의 저녁 수라 2번이었다.
이외에 아침 수라를 먹기 전에 죽이나 미음 등을 먹는 식사와 간단한 점심 그리고 야식 총 5번의 식사가 있었다.
이에 더해 왕의 수라는 '12첩 반상'으로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메뉴인
밥과 탕, 찌개, 찜, 전골, 김치류와 장류를 제외하고 12가지의 반찬을 올라가 균형적으로 완벽했다고 한다.
4. 조선 왕은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원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중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땅덩어리를 가진 조선에서
중국의 국찬사서랑 맞먹는 분량의 역사책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원은 '근성'이 넘치는 사내들이었다.
왕이 비밀리에 말하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몰래 병풍 뒤에 숨기도 했고,
초대도 받지 못한 연회 자리에 불쑥 나타나는가 하면
심지어 왕과 중전이 합방하는 곳에도 기어이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왕은 이들을 자기 마음대로 대하지 못했으며 창피한 일을 저지른 뒤
그 일을 적지 않도록 하지도 못했다.
후대에 자신이 어떤 왕으로 기록될까를 염려한 탓이다.
5. 조선 왕은 '고노동' 직책이었다.
조선의 왕은 상상하기 힘든 양의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고노동' 직책이었다.
늘 끊임없이 '공부'하며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 조선의 국가 분위기상 왕은 그 중심에 서야 했던 것이다.
하나의 정책을 정하려 하면 조정에 있는 똑똑한 대신들이 덤벼들고,
지방에서 이름난 양반들이 상소를 올리는 통에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었다고 한다.
최고 권력자여도 그냥 공포로 윽박지르는 '독재' 정치가 아니었기에 '논리적 논박'은 필수였다.
이 때문에 왕은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했다.